고려청자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박물관 쇼케이스 안에서 은은한 조명을 받는 우아한 학 그림,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국보급 매병 같은 이미지가 먼저 그려질 거예요.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만약, 고려인들이 그 귀하디귀한 청자로 화장품을 담아 쓰고, 심지어는 변기까지 만들어 썼다면 믿으시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자를 ‘고상한 예술품’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이건 절반만 아는 겁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청자의 진짜 모습은 고려인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거든요. 지금부터 우리가 박물관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청자의 놀라운 활용 범위, 그 반전 가득한 이야기를 하나씩 파헤쳐 볼게요.
오해의 시작, ‘비색청자’는 원래부터 귀족 전용이었을까?
다들 청자는 왕실이나 최고 귀족의 전유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시작은 조금 달랐습니다. 물론 고려청자가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비색(翡色)을 완성하며 세계적인 명품으로 거듭난 건 사실이에요. 특히 상감 기법이 더해진 화려한 청자들은 왕실과 귀족 사회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아이템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청자가 다 그렇게 화려하고 비싼 ‘명품’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고려 시대에도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 즉 요(窯)는 전국 각지에 분포해 있었어요.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의 가마터에서는 최상급 청자를 생산해 중앙 정부에 납품했지만, 다른 지역의 수많은 가마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쓸 그릇이나 용기를 만들어냈거든요.
이걸 ‘지방요’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생산된 청자들은 상감 기법 없이 단순한 문양을 새기거나 아예 문양이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투박하고 세련미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튼튼하고 실용적이라 고려인들의 식탁과 부엌을 책임지는 생활필수품이었던 셈이죠. 마치 오늘날 우리가 플라스틱 용기나 스테인리스 그릇을 쓰듯, 당시 사람들에게 청자는 밥 먹고, 국 담고, 음식을 저장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용기이기도 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박물관에 가보면 화려한 상감청자 매병 옆에, 이름 모를 고려인이 썼을 법한 투박한 청자 대접이나 접시가 함께 전시된 걸 볼 수 있어요. 경기도자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이런 고려청자의 흐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왕실의 화려한 자기부터 서민들의 일상용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청자 = 비싼 예술품’이라는 공식은 이제 머릿속에서 살짝 지워두는 게 좋겠네요.

고려시대 K-뷰티, 청자 화장품 용기에 담긴 비밀
자, 청자가 식기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바로 여성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 화장대 위로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요즘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미(美)에 대한 열망은 고려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청자 화장품 용기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여인들은 동백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을 머리에 발라 윤기를 내고, 분꽃 씨앗이나 조갯가루로 만든 분을 얼굴에 발랐다고 전해져요. 액체나 가루 형태의 화장품을 보관하려면 당연히 용기가 필요했겠죠? 바로 이 용기를 청자로 만들었습니다.
주로 ‘청자 유병(油甁)’과 ‘청자 합(盒)’이 그 주인공인데요.
- 청자 유병: 이름 그대로 기름(油)을 담는 작은 병이에요. 보통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크기에, 목이 가늘고 길어서 기름을 한 방울씩 조절해서 따르기 좋게 만들어졌죠. 여기에 동백기름이나 살구씨 기름 같은 걸 담아 머릿결을 가꾸거나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데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청자 합: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을 말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크림이나 파우더를 담는 용기(jar)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여기에 연지나 분, 눈썹을 그리는 먹(미묵) 같은 고체나 가루 형태의 화장품을 보관했죠. 크기도 앙증맞고, 표면에 섬세한 꽃무늬나 구름무늬를 새겨 넣어 장식성을 높인 유물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이건 좀 놀랍지 않나요? 그저 옛날 도자기인 줄로만 알았던 청자가, 사실은 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의 ‘뷰티템’이었다는 거니까요. 요즘 화장품 브랜드들이 용기 디자인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는 것처럼, 고려시대 여인들도 비취색 청자 용기에 담긴 화장품을 쓰면서 나름의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꼈을 거예요.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에서도 고려시대의 청자 용기부터 현대의 K-뷰티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미(美)의 역사를 조명했을 정도니, 이건 세계적으로도 인정하는 흐름인 셈이죠.
여기서부터가 진짜, 주방을 넘어 가장 은밀한 곳으로
식기, 화장품 용기까지는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청자의 활용 범위는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집안에서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바로 화장실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화장실은 현대적인 수세식 변기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고려시대에 사용했던 이동식 변기, 즉 ‘요강(尿綱)’이나 침을 뱉는 그릇인 ‘타구(唾具)’ 역시 청자로 만들었다는 사실, 이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왜 충격적이냐면, 우리는 청자를 깨끗하고 고결한 예술품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배설물을 담거나 침을 뱉는, 어찌 보면 가장 ‘더러운’ 용도에도 최고급 자재인 청자를 사용했다는 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청자는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품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였던 거죠.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여러 사립 박물관에 가보면 청자 요강이나 타구가 종종 전시되어 있습니다. 형태는 우리가 아는 요강과 비슷하지만, 그 표면에는 우아한 연꽃무늬나 국화 무늬가 상감 기법으로 새겨져 있기도 해요. 심지어 아기 사자 모양의 손잡이를 붙이는 등 장식에도 무척 신경을 썼더라고요.
| 구분 | 주요 용도 | 특징 |
|---|---|---|
| 일상 식기 | 밥, 국, 반찬 그릇, 저장 용기 | 문양이 없거나 단순한 실용적 디자인 |
| 미용 도구 | 기름병(유병), 분합(합) | 작고 섬세하며,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 |
| 위생 도구 | 요강, 타구 | 실용적 형태에 상감 기법 등 장식성을 더함 |
이런 위생 도기까지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건, 고려인들의 미적 감각이 일상 전반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음식은 더 맛있다’는 생각처럼, ‘아름다운 곳에서는 생리 현상도 더 품위 있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흥미로운 지점이죠.
왜 우리는 청자의 ‘일상성’을 잊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일상 깊숙이 쓰였던 청자는 어쩌다 박물관에 갇힌 ‘고귀한 유물’의 이미지만 갖게 된 걸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려 왕조의 쇠퇴와 조선의 건국입니다. 고려 말, 잦은 외침과 내부 혼란으로 국력이 쇠하면서 최상급 청자를 만들던 관요(官窯)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청자 생산 기술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조선의 분청사기(粉靑沙器)와 백자(白磁)였습니다. 특히 조선을 건국한 신진 사대부들은 고려 귀족 문화의 상징이었던 화려한 상감청자 대신,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백자를 선호했어요. 유교의 검소함과 절제미를 새로운 시대의 정신으로 내세운 거죠. 이 때문에 청자는 자연스럽게 주류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땅속에 묻혔던 청자들이 도굴되거나 발굴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아무래도 화려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명품들이었습니다. 투박한 일상용기보다는 국보급 매병이나 정교한 향로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이런 명품들 위주로 연구와 수집이 이루어지다 보니 ‘청자 = 귀족의 예술품’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된 셈이죠.
참고로 이런 흐름은 리움미술관 같은 곳에서 소장한 청자 유물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기품있는 작품들 사이에서 고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평범한 저장 용기들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박물관에서 ‘진짜’ 고려청자를 알아보는 법 (꿀팁)
자, 이제 우리는 고려청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청자는 단순히 비싸고 예쁜 도자기가 아니라, 천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숨결이 깃든 ‘생활용품’이었습니다.
이제 박물관에 가시면 그냥 ‘우아하다’, ‘비색이 곱다’ 하고 지나치지 마세요. 이 새로운 관점으로 청자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세요. 아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첫째, 화려한 주인공 옆의 ‘조연’들을 찾아보세요. 모두가 감탄하는 상감운학문 매병 옆, 구석에 놓인 작은 기름병이나 뚜껑이 있는 합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상상하는 겁니다. ‘아, 저 작은 병에 동백기름을 담아 머리를 빗던 고려 여인이 있었겠구나. 저 합에는 어떤 색의 연지가 담겨 있었을까?’ 하고요. 유물과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둘째, 형태와 용도를 추리해보세요. 설명에 ‘타구’나 ‘요강’이라고 쓰여 있는 청자를 발견한다면 피하지 말고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왜 이런 용도의 그릇까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고려인들의 일상 속 미의식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셋째, 완벽하지 않은 ‘B급 청자’에 주목하세요. 색이 고르지 않거나 모양이 살짝 삐뚤어진 지방요 청자 그릇을 보면, ‘이건 누가, 어떤 음식을 담아 먹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세요. 화려한 국보급 청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범한 고려인의 체온과 삶의 이야기가 바로 그 투박함 속에 담겨 있거든요.
고려청자는 더 이상 박물관 쇼케이스 안에 박제된 유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와 똑같이 먹고, 꾸미고, 심지어는 용변까지 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청자가 전혀 다르게 보일 거라고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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