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역사, 혹시 ‘전쟁’만 기억하시나요?
대부분 발해 하면 대조영의 건국 신화나, 아버지 무왕이 당나라 등주를 공격했던 강렬한 장면을 떠올리실 겁니다. 맞아요, 아주 화끈한 역사죠. 그런데 발해 228년 역사에서 가장 길게, 무려 56년간 나라를 다스린 왕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3대 문왕(대흠무) 이야기인데요. 솔직히 말해 문왕은 아버지 무왕에 비해 임팩트가 약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전쟁 영웅 아버지를 둔 탓에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유약한 왕 아니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발해 역사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갈립니다. 단언컨대, 문왕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발해라는 나라의 진짜 저력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셈이죠. 오늘은 그가 펼친 발해 문왕의 통치 철학, 그중에서도 국가의 기틀을 완전히 새로 짠 ‘문치주의’에 대해 제대로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Q1. 아버지 무왕과 정반대 길을 걸었다는데, 사실인가요?
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완전히 다른 리더십’이었습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 발해가 처한 상황을 알아야 해요.
아버지 무왕(대무예) 시절의 발해는 건국 초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신생 국가였습니다. 사방이 적이었죠. 남쪽엔 신라, 서쪽엔 당나라. 특히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니 긴장감이 엄청났을 겁니다. 그래서 무왕은 ‘인안(仁安)’이라는 독자 연호를 쓰면서 당과 맞섰고, 급기야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반도를 선제공격하는 초강수를 뒀던 거죠. 이건 ‘우리 만만하게 보지 마라’는 강력한 메시지였어요.
그런데 아들인 문왕이 즉위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뀝니다. 그는 ‘대흥(大興)’, ‘보력(寶曆)’ 같은 연호를 사용하며 국가의 ‘큰 부흥’을 꿈꿨습니다. 무력 충돌보다는 안정과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국가 운영의 방향키를 완전히 틀어버린 겁니다. 이게 바로 문왕 통치 철학의 핵심인 문치주의(文治主義), 즉 무력이나 힘이 아닌 학문과 예법, 제도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의 시작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아버지만큼 배포가 없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 기준에서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넓게, 더 멀리 본 거죠. 언제까지나 전쟁만으로 나라를 유지할 순 없으니까요. 국가라는 건 결국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문왕은 바로 그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겁니다. 싸워서 영토를 지키는 시대에서, 제도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시대로의 전환. 정말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던 셈입니다.
Q2. ‘문치주의’,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펼쳤나요?
말로만 ‘문화로 다스리겠다’고 하면 공허하죠. 문왕은 이걸 구체적인 제도로 현실에 구현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한데요.
H3. 당나라 제도, 그냥 베낀 게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3성 6부(三省六部)라는 중앙 통치 조직의 정비입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맞습니다. 당나라의 시스템을 받아들인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진짜 놀라운 포인트가 나옵니다.
문왕은 이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름과 운영 방식에 발해만의 철학을 심어 넣었어요. 당나라의 6부가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으로 실무적인 명칭을 썼던 것과 달리, 발해는 충(忠)·인(仁)·의(義)·지(智)·예(禮)·신(信)이라는 유교 덕목을 부서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단순한 행정 부서를 넘어, 국가 운영의 근본을 유교적 가치에 두겠다는 선언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그냥 힘만 센 나라가 아니라, 도덕과 철학이 있는 문화 국가’라는 자부심의 표현이었죠. 이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주체적인 수용이자 창조적인 재해석이라고 봐야 합니다.
| 구분 | 당나라 6부 | 발해 6부 | 핵심 가치 |
|---|---|---|---|
| 좌사정(左司政) 관할 | 이부, 호부, 예부 | 충부, 인부, 의부 | 충성, 인자함, 의로움 |
| 우사정(右司政) 관할 | 병부, 형부, 공부 | 지부, 예부, 신부 | 지혜, 예의, 믿음 |
이런 디테일에서 문왕의 큰 그림이 보이는 거죠.
H3. 미래를 위한 투자, 주자감 설립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그 시스템을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문왕은 국립대학 격인 ‘주자감(胄子監)’을 설치했습니다. 여기서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쳐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직접 길러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전까지는 힘센 장군이나 특정 가문이 권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학문적 소양과 행정 능력을 갖춘 관료들이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거든요. 장기적으로 국가를 안정시키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는 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을 겁니다. 인재를 키우는 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으니까요.
Q3. 수도는 왜 그렇게 자주 옮겼던 건가요?
문왕 시대를 공부하다 보면 다들 의아해하는 지점이 바로 ‘잦은 수도 이전’입니다. 중경 현덕부에서 시작해 상경 용천부로, 말년에는 동경 용원부로 수도를 옮겼거든요. 이걸 두고 ‘왕권이 불안정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통치 행위이자 자신감의 발로였다고 생각해요.
첫 수도였던 중경이 내실을 다지는 공간이었다면, 상경으로의 천도는 발해의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상경성은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던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반듯한 주작대로와 격자형 도로망, 웅장한 궁궐까지. 이건 그냥 도시 하나 옮기는 수준이 아니에요. ‘우리 발해가 이 정도의 국력을 가진 대제국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언적 의미가 강했죠. 이런 대규모 수도 건설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왕의 왕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말년에 동경으로 옮긴 건 왜일까요? 이건 외교적, 경제적 필요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경은 동해에 가까워서 당시 주요 교역 파트너였던 일본과의 소통에 훨씬 유리한 위치였거든요. 즉, 수도 이전은 혼란의 증거가 아니라, 정치적 과시(상경)와 실리적 필요(동경)에 따른 전략적 판단이었던 셈입니다.
Q4. 외교 정책, 정말 신의 한 수였을까?
문왕의 외교는 그야말로 ‘유연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 무왕이 ‘강 대 강’으로 맞붙었다면, 문왕은 실리를 위해선 누구와도 손을 잡을 줄 알았죠.
우선 최대 위협이었던 당나라와의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사신을 보내며 문물을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경을 안정시켜 내정에 집중할 힘을 얻었습니다. 이건 굴복이 아니라 현명한 실리 외교였죠.
남쪽에 있던 통일신라와는 ‘신라도(新羅道)’라는 공식 교통로를 개설했습니다. 물론 두 나라 사이에는 고구려 영토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이 있었지만, 문왕은 그런 감정적인 대립보다는 교류를 통한 실익을 택한 겁니다. 이런 실용적인 노선 덕분에 발해는 고립되지 않고 동아시아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 스스로를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 칭하며 고구려 계승 의식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당나라나 신라 앞에서는 실리 외교를 펼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거죠. 힘의 균형을 읽고 각 상대에 맞춰 다른 외교 전략을 구사하는 노련함, 이게 바로 문왕 시대에 발해가 안정을 찾은 비결이었습니다. 다양한 발해 왕들의 업적을 정리한 글을 보면, 문왕의 통치 기간이 유독 길고 안정적이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Q5. 그래서 문왕의 통치 철학, 어떤 의미가 있나요?
결론적으로 문왕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는 없었을 겁니다.
문왕의 56년은 화려한 정복 전쟁은 없었을지 몰라도, 발해라는 나라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인 결정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튼튼하게 닦아놓은 제도적, 외교적 기반 위에서 훗날 10대 선왕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거죠.
마치 조선의 기틀을 다진 세조나 성종의 업적이 있었기에 이후 조선 왕조가 5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통치 철학.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임을 문왕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제 발해 역사를 볼 때, 무왕의 칼과 함께 문왕의 붓과 제도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폭발적인 성장을 이끄는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그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리더십이야말로 한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발해 문왕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혹시 발해 역사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단순히 왕의 이름만 외우기보다는 그가 왜 그런 정책을 폈는지, 그 시대적 배경은 어땠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훨씬 입체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발해 6부의 이름(충, 인, 의, 지, 예, 신)에 담긴 의미부터 다시 곱씹어보는 것, 그것이 발해 문왕의 통치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첫걸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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